일반 와인정보
포도주가 여자랑 마시기 좋은 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알코올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웬만한 포도주 한 병의 알코올 함유량은 소주의 1.3배 내외이다.
순하다고 생각해서 만만히 보았다가는 자제력 상실, 언어 장애, 구토, 기억력 저하 같은 알코올 효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특히 첫번째 효과에 주목하는 사람들(특히 남자들)에게 포도주는 유용한 모양이다.
그 여자와 폼 잡으며 술 한 잔 하려면 만만한게 적포도주다.
색깔도 분위기 있고 웬만한 가게는 구색도 갖춰놓고 있으니 주머니 사정에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자가 무장을 해제하기엔 떫은 술맛이 걸린다.술꾼임을 자처하는 나도 적포도주 맛이 편해지는데 여섯 달은 걸린 것 같다. 그것도 포도주 본토인 이탈리아에서 하루 걸러 한 번씩 마셨는데도 그렇다.
이럴 때 샴페인 한 잔은 기막힌 궁합이다.
더구나 함께 먹는 음식에 어느 정도는 구애받는 적포도주나 백포도주에 비하면 샴페인은 어떤 음식에나 잘 어울리므로 자신의 와인 상식이 '뽀록' 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적어도 빵 가게에서 파는, 설탕으로 범벅이 된 '복숭아맛 샴페인' 만 아니면 된다.
문제는 어지간한 동네 빼고는 샴페인 라인업이 형편없다는데 있다. 게다가 가격은 '강도' 수준이다.
샴페인을 주문하면 '너 잘 걸렸다' 하는 식이다. 이뿐이랴. 어떤 가게에서는 서비스하는 이가 태연하게 마개를 뽑으며 뻥튀기 놀이를 하는 경우도 보았다. 흔들어 주지 않은게 다행이다.
샴페인은 당도를 기준으로 두 가지 맛이 있다.
드라이 타입과 스위트 타입이다. 드라이 타입은 특유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와인 애호가가 아니라면 오히려 역효과다(사실 이 고약한 냄새 때문에 샴페인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스위트 타입은 무장해제용으로 적합한 무기다. 하지만 괜찮은 품질은 역시 값이 문제다. 신용카드 돌려막기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백포도주로 방향을 틀었다 치자. 그러나 약발이 안 먹는다.
백포도주는 달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90퍼센트 이상이 드라이 타입이다.
백포도주도 음식을 맛나게 먹기 위한 술이기 때문에 당분 함유량이 적게 마련이다.
어떤 술은 적포도주보다 쓴맛이 강하다. 쓴맛이 식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포도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다.
그래도 라입업에서 만만한 게 없다면 독일산 백포도주를 고르시라.
대개 단맛이 상당히 강하고 과일향이 풍부하다. 특히 리슬링(Riesling) 품종을 사용한 술이라면 향기 하나는 보증한다.
적백이 다 싫다면 두 가지 술을 제안한다.
하나는 로제 와인이다. 말 그래도 핑크빛의 섹시한 포도주다.
고급 적포도로 만드는 술이 아니어서 값도 적당하다. 한병에 식당 가격으로 5만원이면 뒤집어쓴다.
색깔은 기가 막히다. 탁자에 놓인 촛불에 반사되는 빛은 예술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종류로는 조금 값이 센 프랑스산 앙주(Anjou)와 캘리포니아산 화이트 진판델(Zinfandel)이 있다.
앙주는 르와르 지방산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진판델은 엄밀히 말해 백포도주 계열이지만 색깔만은 로제에 속한다. 맛은 앙주가 낫지 싶다.
다른 하나는 모스카토(Moscato)라는 술이다. 백포도주에 속하지만 개성이 각별하다.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특산을 최고로 친다. 모스카토 또는 뮈스카라고 부르는 백포도를 발효한 술인데 알코올 도수 6도 내외에 단맛이 기막히다.
포도 특유의 신선한 과일향이 숨소리에 묻어날 만큼 매우 풍부하다. 내 경험으로는 술 못 마시는 여인네들도 이 술 반 병은 거뜬히 비워낸다.
로제처럼 빈티지 개념이 없다. 수확해서 한 일년만 묵었다 나오면 딱이다.
헷갈린다고? 그렇다면 눈 질끈 감고 '스위트한 샴페인 한 병 주세요' 해버리라.
공부하기 싫어하면 주머니가 고생하는 법이니깐.
- 에스콰이어 2003년 4월호 (박찬일/와인칼럼니스트)










